10월~11월이 윌슨센터에서 연중 가장 바쁜 시기라고들 합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행사와 컨퍼런스가 많이 계획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윌슨센터 북한문서화 프로젝트의 가장 큰 행사인 oral history conference도 역시 매년 10월이나 11월에 개최됩니다.
저는 지난 주부터 시작해서 3주동안 매주 2~3일씩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제 연구와 직접?간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입니다. 지난 주에 북한과 남북과관계 다루는 컨퍼런스 2개가 있었다면, 이번주는 냉전후기 서유럽에 관한 세미나가 있고, 다음 주 동유럽에서의 냉전과 유럽의 “주변국”의 역할에 대한 컨퍼런스에 갈 예정입니다. 한반도를 다루는 행사가 아니더라도 연구대상과 같은 시기에 세계 다른 지역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시아를 넓혀 줄 뿐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이 그 시기의 변화를 검토하는데 어떤 방법을 쓰는지 알아보는 것이 제 연구방법론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윌슨센터에서 일하는 연구자들 대부분은 서로의 연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다는 것이 윌슨센터의 특징이며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제 연구방향이나 관심분야와 유사점이 있다고 파악되는 행사에 가보면 항상 한반도에 적용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2가지만 예를 들자면, 베를린 벽의 케이스를 통해 현대 독일이 동독의 과거를 의미화하는 문제에 대한 발표회에 갔는데 그 발표로 인하여 한반도 통일 후 북한 뿐만 아니라 남한도 과거의 정책들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됐습니다. 또한, DMZ설치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란에 대한 세미나에서 발표자는 이란의 협상방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란의 이라크과의 전쟁, 그리고 국제사회 및 유엔과의 경험을 통한 학습효과를 분석하면서 그 대답을 찾았습니다. 한국학계에서도 북한의 협상 방식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런 시도들을 체계화하면 북한의 전략이 조금이나마 덜 ‘우발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연구자들의 발표를 듣고 토론하고 유사점을 찾는 것이 재미있고 나름대로 편한 공부방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논문을 쓰는 데 가장 유익한 방법은 자신의 연구에 대해 발표를 하고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입니다. 10월 내내 진행됐던 학자소개세션이 바로 그런 목적으로 계획된 행사입니다. 저는 1970년대 남북관계와 후기 냉전체제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제 연구를 소개했을 때 토론시간에 많은 질문, 의견과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독일대화와의 비교, 남북관계 전 시기에서의 1970년대의 위치와 중요성 등 등에 대한 분석을 추가해야 더욱 많은 연구자들이 제 논문에 관심을 갖고 유익한 정보로 읽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컨퍼런스들이 다 소중한 자산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윌슨센터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가장 큰 추억으로 남을 일은 지난 주에 있었던 oral history conference의 경험입니다. 윌슨센터 입장에서도 제가 공부하는 시기와 올해 oral history conference의 시기가 동일한 것이 제가 윌슨센터의 연구자로 뽑히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우리가 심층분석한 시기는 1973년부터 1976년까지입니다. 당시 사건의 목격자로서 미국측에서 Paul M. Cleveland대사, David T. Jones 외교관, Daniel O’Donohue대사 등이, 남한 측에서 이동복 의원, James M.H. Lee등이, 북한 측에서 김현식 교수가 참석했습니다. 작년 컨퍼런스에 비하면 동유럽 외교관이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김현식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북한 내부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참석한 학자는 모두 대상 시기에 대해 논문을 출판했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미국학자는 Gregg Brazinsky, Robert Carlin, James Person, William Stueck 등, 한국학자 류길재, 마상윤, 신종대, 선준영, 한용섭 교수 등, 중국학자 Yafeng Xia, 일본학자 Michishita Narushige, 독일학자 Bernd Shaefer와 윌슨센터 역사와 유럽 프로그램의 담당자 Christian F. Ostermann교수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저는 남북대화의 종말에 대한 첫번째 세션의 토론자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평소에 품어온 질문을 그 시기 목격자와 정책 결정자들에게 물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남북한 대화와 당시 남한, 북한, 미국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학계에서나 미디어에서 많이 토론된 이슈이지만 의견일치가 있다기보다 매우 다양한 시각이 여전히 공존합니다. 정책문서와 다른 역사적 자료를 읽어도 불확실한 부분이 있고 사실에 가장 가까운 묘사가 어느 것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컨퍼런스를 통해 알고 싶은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고 하면 과언이겠지만, 제 생각이 어느 부분에서 입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어느 부분은 다르게 평가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깨닫게 되고, 사건에 대한 분석방향이 컨퍼런스 전보다 많이 정리되었습니다.
Oral history conference 다음 날 북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고, 행사 다 마치고 국제교류재단 소장님,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또 2차에 한국교수님들이 오셔서 컨퍼런스의 좋은 ‘뒷풀이’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푹 쉬었고 이제 컨퍼런스에서 새로 발견된 것을 정리하면서 논문작성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