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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문화원 연수를 다녀와서

올여름 필자는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 파견 연수차 영국에서 두 달을 보냈다. 영국문화원은 국제 문화교류에 있어 세계 최대 규모와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관으로 평소 재단이 본보기로 삼고 있는 기관이다.
이번 연수는 재단이 먼저 제안하고 영국문화원이 이에 응해 구체적인 일정과 프로그램을 수립함으로써 실행에 옮겨졌다. 영국문화원은 필자가 재단에서 6년간 미술 관련 업무를 주로 맡아왔던 점을 고려하여 연수 내용의 상당 부분을 문화원의 미술 사업 위주로 마련해주었다. 또한 이번 기회에 런던 본부뿐만 아니라 맨체스터 본부, 스코틀랜드, 웨일스 사무소 등을 순회하여 영국문화원의 다양한 사업과 지역마다 특색 있는 영국 문화를 체험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 결과 5월 13일부터 6월 9일까지 4주간은 에든버러, 6월 9일부터 16일까지는 카디프, 16일부터 24일까지 일주일은 맨체스터, 그 후 7월 13일까지 3주 동안은 런던에서 매우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지만 장장 63일간의 연수내용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짧은 관계로 연수기간 동안 필자가 큰 관심을 갖고 조사했던 ‘베니스비엔날레’사업과 ‘스트레티지 2010(Strategy 2010)’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비엔날레를 통한 자국 예술의 창조적 역량 과시
이번 연수 프로그램은 미술 관련 업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 만큼 초반에 근무한 영국문화원 스코틀랜드 사무소(British Council Scotland)와 웨일스 사무소(British Council Wales)에서는 연수기간 내내 예술사업부서에 소속되어 그들의 업무를 견학하고, 지역의 주요 박물관, 미술관, 화랑 등을 방문하였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사무소의 대표적인 예술사업 중 하나다. 영국문화원은 1938년부터 베니스비엔날레의 영국관을 운영해오고 있는데, 이 영국관 운영은 문화원 런던 본부의 소관업무였다. 그런데 2003년부터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사무소가 주관이 되어 영국관과는 별도로 자국의 현대미술전시를 각각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역별 전시 분화는 영국관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잉글랜드 출신 작가의 개인전이 개최되어 다른 지역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소개되는 기회가 적었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영국관에서 소개하는 유명작가 한 사람이 영국 미술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자국 전시에서 유망한 신진작가들을 그룹전의 형식으로 소개함으로써 보다 폭넓게 영국의 현대미술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단순히 영국관을 보완하는 것 이상의 전략이 있는 듯하다.
아시다시피 스코틀랜드는 1997년 주민투표에 의해 약 300년 만에 잉글랜드로부터 독립된 의회를 부활시켰다. 따라서 경제, 교육, 보건, 문화예술, 치안, 교통, 무역 등 외교안보문제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국가정책을 독자적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잉글랜드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스코틀랜드는 문화예술을 국가정책의 중심에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자치권한을 갖게 된 스코틀랜드 정부가 자국 예술가들의 창조적 역량을 국제사회에 소개하는 장으로 베니스비엔날레를 선택하여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 이어 의회를 구성하게 된 웨일스나, 북아일랜드도 스코틀랜드만큼 강력한 문화예술 증진정책을 펼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베니스비엔날레를 활용하는 데는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베니스비엔날레 사업만 언급하였지만 영국문화원의 예술부서는 문화원 내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부서로, 다루는 분야만 해도 문학,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디자인,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에 해당) 등 실로 다양하다.
 

영국문화원의 혁신전략“Strategy 2010”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의 연수가 영국문화원이 수행하는 예술 관련 사업 위주로 진행되었던 것에 비해 후반부에 근무한 맨체스터와 런던에서는 영국문화원의 본부로서 전 세계 영국문화원사무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관리체계를 엿볼 수 있었다. 영국문화원은 세계 110여 개 국에 220여 개의 사무소를 두고 직원만 해도 7,000명이 넘는 거대 조직이다. 맨체스터와 런던에 이원화되어 있는 본부는 이러한 거대 조직이 잘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하는 작전 기지와도 같다. 따라서 지역 및 해외 사무소보다 전략개발, 성과분석, 마케팅, 대정부 업무와 같은 기능들이 강화되어 있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스트레티지 2010’이라는 제명 아래 2010년을 대비하는 전략개발에 문화원 전체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스트레티지 2010’은 영국문화원 조직 및 사업의 질적 개선을 위한 전면적인 혁신전략으로, 이 전략에 따라 개편이 시작되는 내년 봄부터는 문화원의 사업내용과 운영방식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티지2010’은 영국문화원을 통해 영국을 경험하는 사람의 숫자를 2010년까지 현재의 두 배 이상인 5천만 명으로 늘리고, 이들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보다 궁극적으로는 좀 더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업을 수행하여 영국문화원의 국내 및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효과적으로 알리고 문화원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재단의 위상 정립을 위한 혁신전략 수립 필요
런던 로열아카데미가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여름전시(Summer Exhibition) 야외전시 광경.
미술관 중정에 데미안 허스트(Damien Hurst)의 버진 마더(The Virgin Mother)가 설치되어 있다.
영국문화원이 이렇게 공을 들여 조직의 미래를 위한 전략을 짜는 것을 우리는 눈여겨 봐야 한다. 조직의 전략은 마치 건물의 기본 골조와도 같은 것이다. 골조가 튼튼하면 건물의 기본적인 안전은 보장받는다. 밝히기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재단은 그동안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전략 개발에 소홀하고 개개의 사업수행에만 치중해왔다. 뼈대 없이 살로만 몸을 지탱해온 느낌이다. 물론 여태까지 재단이 해온 일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전략이 없으면 조직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고, 외부의 조그만 충격에도 조직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기에 이제부터라도 튼튼한 뼈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단은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는다. 사람으로 치면 유년기를 보내고 늠름한 어른이 되기 위해 막바지 성장을 할 시기다. 지난 15년 동안 재단은 해외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많은 일을 했고, 5개의 해외사무소 설치와 문화센터 개관 등 외형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 그러나 기금운용의 불안정성, 청사 지방 이전 등 재단의 존립기반을 약화시키는 외부의 도전 또한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가 명실상부한 한국의 국제교류 전담기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스트레티지 2010’과 같은 실질적인 혁신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63일간의 연수는 필자에게 인생의 큰 선물과도 같았다. 영국문화원과 같은 세계적인 기관에서 두 달간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인 데다, 연수 내용도 평소 업무와 관심을 반영한 맞춤형 프로그램이어서 매일매일 즐겁고 보람된 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또한 단신(單身)으로 영국의 여러 도시를 두루 돌아다니며 다양한 지역문화를 체험한 것도 값진 공부이자 평생 간직할 추억이다. 사실 필자는 90년대 말 유학을 위해 영국에 2년간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2개월간의 연수에서 유학 시절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아울러 7년 만에 유학시절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모교를 방문한 것은 보너스와도 같았다. 이 자리를 빌어 알찬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신 주한영국문화원의 이안 씸(Ian Simm) 원장님과 고유미 공보관님, 그리고 본연의 업무로 바쁘신 중에도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영국문화원 직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①영국문화원 런던 본부 전경
②영국문화원 에든버러사무소 예술부 전원이 참가한 더프타운(Dufftown) 소재 글렌피딕갤러리(Glenfiddich Gallery) 전시 개막식 :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스키 회사인 글렌피딕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③에든버러 시내 콜렉티브갤러리(Collective Gallery)에서 개최한 웨일스 출신 작가 베드워르 윌림암스(Bedwyr Williams) 개인전 설치 광경 : 윌리암스는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웨일스 전시에서 소개된 작가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