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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름으로, 하라레에서 경희궁까지

짐바브웨의 하라레국제공항. 입국심사대의 관리는 ‘Korea’라는 나라를 처음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마침 마중 나왔던 축제 조직위원회의 직원들이 거들었다. “월드컵. ” 그제야 알았다는 눈치인 이 관리는 우리 공연단 일행을 향해 짐바브웨에 머무르는 동안 잘 지내라는 인사까지 했다. 2002년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월드컵축구대회는 2년 후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한국음악의 전통을 돋보인 시나위
비행기 갈아타기를 두번,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스물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하라레의 한 호텔 로비에는 조직위원회의 또 다른 직원이 체크인을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짐바브웨 최대의 문화예술행사답게 ‘하라레국제예술축제(HIFA, Harare International Festival of Arts)’ 조직위원회에서는 참가자들을 위해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2004년도 하라레국제예술축제에는 동양권에서는 유일하게 참가한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전 세계 10개 국가에서 선발된 예술단체들이 자신들의 공연예술작품을 선보였다.

남부 아프리카의 최대 국제예술행사인 하라레국제예술축제에 한국의 공연예술단이 참가한 것은 2002년도에 이어 금년이 두 번째. 모두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원했다.

재단은 금년도 하라레국제예술축제 한국 공연프로그램에 한국인의 음악적 전통이 드러나는 음악을 담기로 결정했다. 프로그램 전반부에는 사물놀이, 해금, 판소리 등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을, 후반부에는 피아노와 타악기가 펼치는 프리재즈(Free Jazz) 음악을 배치함으로써 한국의 전통적 리듬감이 현대음악의 정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지 알 수 있게 했다.

재단은 한국 공연단 이름을 ‘Korean Folk and Modern Sounds’로 명명하고 단원으로는 각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연주자들을 초빙했다.

한국의 하라레공연은 시내 공원 안에 조성된 특설무대 ‘Global Stage’에서 펼쳐졌다. 사물놀이패의 역동적 연주에 이어진 가냘프면서도 변화무쌍한 해금의 음색은 공연을 찾은 이국의 관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판소리 대목에서 한국어로 된 판소리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도 거의 모든 관객이 판소리에 몰입하는 놀라운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판소리가 유네스코의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입증한 것이다.


1시간 30분 동안 계속된 한국음악 공연의 백미는 피날레로 연주된 시나위였다. 한국의 전통 앙상블 음악인 시나위에 바탕을 두고 모든 출연자가 함께 어우러져서 즉흥적인 연주를 펼치자 관객들도 어깨를 들썩이고 박자를 맞추며 무대와 객석이 혼연일체가 되었다. 한국의 전통음악이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짐바브웨의 국민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한국 전통악기로 연주한 터키 민요,우스카다라
짐바브웨 공연을 마친 단원들은 다음 공연이 예정된 터키로 향했다. 터키 공연은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문화센터와 앙카라의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짐바브웨에서와는 달리 터키 관객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공연단에 친밀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터키의 한국전 참전, 많은 한국 관광객의 터키 방문, 2002 월드컵 준결승에서 양국 축구팀이 보여준 우정 등으로 터키에 한국이 많이 알려진 탓인 듯 했다. 실제로 한국 음악인들의 공연이 개최된 두 도시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한국전에 참전했던 터키 노병들이 가슴에 훈장을 단 채 공연 시간 훨씬 이전부터 미리 와서 공연을 기다렸다.

터키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한국 연주인들은 당초 프로그램에는 없었지만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터키 민요 우스카다라(Uszkudara)를 즉석 연주했다. 한국의 전통 악기로 우스카다라가 연주되자 일순간 공연장 내부에 동요가 일더니 모든 터키 관객들이 환호하며 연주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재단은 짐바브웨와 터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연주자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Korean Folk and Modern Sounds’의 공연 내용이나 연주자의 기량으로 볼 때 몇번의 해외 공연만으로 끝내기가 아쉬운 만큼 국내에서도 앵콜 콘서트를 열자는 것이었다. 짐바브웨, 터키 공연 중에 현지 국가의 사정으로 만족스런 음악 공연 환경이 지원되지 않아 못내 안타깝게 생각하던 단원들도 대찬성이었다.

재단은 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문화 소개 프로그램의 하나로 음악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즉시 장소 섭외에 착수했다. 공연 내용이 한국의 음악 전통이니 만큼 한국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장소라야 했다. 마침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호응을 해왔다. 서울역사박물관이 관할하는 경희궁을 공연 장소로 제안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별궁답게 고즈넉하고 아담한 구조를 갖춘 경희궁은 음악 공연 장소로 최적이었다. 형형색색의 조명을 받은 경희궁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앵콜 음악회에 초청된 주한 외국인들은 고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한국인의 흥과 신명이 담긴 음악에 흠뻑 취하는 듯했다. 하라레에서 시작한 한국음악의 흥은 이스탄불, 앙카라를 거쳐 서울의 경희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공연이 성사되도록 도와주신 주짐바브웨 한국대사관, 주터키 한국대사관, 짐바브웨 HIFA 조직위원회, 터키-한국문화협회, 서울역사박물관 관계자들과 공연 프로그램 구성에 도움을 주신 서울시립대학교 음악대학 한명희 교수 그리고 연주에 혼신을 다해 주신 사물놀이패 몰개, 해금의 강은일, 판소리의 서정금, 프리재즈의 박재천, 미연듀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