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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끈디(Kendi)”

아세안 문화유산
아세안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끈디(Kendi)”
 
김미소(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끈디(Kendi, spouted water bottle)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흔히 사용된 독특한 기형의 물병입니다. 일반적으로 끈디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물병은 손잡이 역할을 하는 긴 목, 두 개의 주구(注口), 납작한 몸체와 같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끈디는 고대부터 꾸준히 사용되었으며, 대륙부와 도서부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전 영역에서 제작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끈디는 토기(Pottery), 도기(Earthware), 자기(Glazed ware), 금속공예(Metal ware) 등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끈디의 어원은 고대 인도의 정병(淨甁)인 쿤디카(Kundika)에 있습니다. 인도에서 쿤디카는 수행자가 휴대하던 물병이었으나, 종교의 발전과 함께 의례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힌두교와 불교가 동남아시아로 전래되면서 종교와 관련된 물질 문화도 함께 유입되었고, 쿤디카도 이 과정에서 동남아시아로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말레이-인도네시아인들에게 쿤디카는 끈디로 불리게 되면서 점차 고유명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끈디는 종교 의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용으로도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고대 사원 유적의 부조나 벽화에서는 끈디를 사용하는 천인(天人, Devata)이나 일반 사람들의 모습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사진 1~2). 사용 계층과 목적에 따라 끈디의 제작 수준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종교 의례나 왕실에서 쓰이는 끈디는 고품질의 선별된 태토(胎土, Clay)를 사용하여 번조되었기 때문에 튼튼하고 내구성이 강합니다. 일상생활용 끈디는 실용성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태토가 조야하고, 깨지기 쉽지만 나름대로의 소박한 멋이 있습니다.
<사진 1>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부조(김미소 촬영)
<사진 2> 캄보디아 바욘 사원 부조(김미소 촬영)
 
동남아시아에서 끈디의 발전은 크게 기원 후 10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0세기 이전의 끈디는 대부분 점토를 빚은 뒤 구워서 제작한 도기(陶器)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10세기 이후의 끈디는 중국에서 전해진 선진 기술을 수용하여, 선별된 양질의 점토로 만든 토기에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구워 완성하는 자기(磁器)로 발전하였습니다. 자기의 생산은 흔히 흙, 불, 기술의 삼요소가 모두 갖춰졌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 말해집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자기가 대량 생산된 시기는 14~15세기 이후이며, 기술이 보편화되는데 적어도 3세기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로 제작된 끈디는 흥미롭게도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국가에서만 제작되었습니다. 중국과 가장 근거리에 위치하며, 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았던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자기를 생산한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트남은 끈디를 청화백자(Blue and white porcelain)로 제작하여, 역으로 중국과 도서부 동남아시아 등지에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의 끈디는 유교의 영향으로 봉황, 사자, 기린, 용과 같은 서상(瑞像, Auspicious symbol)이나, 당초문, 국화문과 같이 중국 도자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양이 선호되었습니다(사진 3).
<그림 3> Dawn Rooney. 2013. Ceramics of Seduction: Glazed Wares from South East Asia. (Bangkok: River Books) 도판 참고
태국과 미얀마의 끈디는 동남아적인 문화를 반영하여 중국의 도자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이 두 국가에서는 진한 녹색 빛을 띠는 청자나, 초콜릿과 같은 진한 갈색 빛을 띠는 갈유도자로서의 끈디가 다량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청화 안료보다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녹유와 갈유를 사용하여 도자를 제작했기 때문이라 설명됩니다. 태국과 미얀마의 끈디는 기형(器形)의 측면에서도 독특한 문화적 변형이 보여집니다. 코끼리 모양 끈디와 공작 모양의 끈디는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이 지역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사진 4).
<그림 4> Dawn Rooney. 2013. Ceramics of Seduction: Glazed Wares from South East Asia. (Bangkok: River Books) 도판 참고
한편 도서부 동남아시아의 끈디는 16세기까지도 도기로 제작되다가 19세기부터는 황동(Brass)과 은(Silver)을 이용한 금속공예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금속공예로 발전한 끈디는 도서부 동남아시아에서 술탄(Sultan)의 권위를 상징하는 표상(Regalia)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말레이시아 이슬람 예술 박물관(Islamic Arts Museum Malaysia)에 소장된 19세기 금속제 끈디들은 자기에 비해 크기가 크고, 기형도 매우 다양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끈디의 표면에는 기하학적 문양이 반복적인 패턴을 이루며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슬람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림 5> 이슬람 예술 박물관 끈디 컬렉션 (김미소 촬영)
이처럼 동남아시아의 끈디는 외부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다시 독창적으로 변화시키는 동남아시아의 유연한 문화적 특징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적 배경이 반영된 끈디를 통해 동남아시아 각국의 미적 취향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이 기고문은 아세안문화원 뉴스레터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