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오랑라우트, 존재감을 드러내다
동남아시아 바다의 주역으로 활약한 해양민족.
글. 김종호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
말레이시아 보드가야섬의 바자우족 수상가옥
말레이반도, 수마트라섬, 자바섬, 보르네오섬, 술라웨시섬, 몰루쿠 제도,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동남아시아 해양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섬이 존재하고 해안선이 복잡하다. 동시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종족과 그들만의 언어와 신앙 그리고 다채로운 문화가 얽혀 있다. 그래서 처음 이 지역에 발을 디딘 이들은 길을 잃기 쉽다. ‘상업의 세기’라 불리는 15~17세기에 동남아산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몰려든 아랍, 중국, 영국, 인도,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부인인 그들이 현지에서 상업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섬과 해안선을 능숙하게 오가는 바다 위 유목민 ‘오랑라우트( OrangLaut)’의 도움이 절실했다. 말레이어로 바다 사람을 의미하는 오랑라우트는 17세기 네덜란드인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인 고대부터 무리지어 바다를 영토 삼아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 다녔으며, 동남아시아 해로를 거점으로 남중국해와 대만,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와 인도양까지 몬순 계절풍이 데려다주는 곳이면 어디든 항해했다고 한다. 당시 오랑라우트는 해상의 유목민으로서 기본적으로는 어부였고 노련한 상인이었으며 해적이자 용병이었다. 17세기 동남아시아의 바다는 향신료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했다. 오랑라우트는 보급품과 수익성 좋은 상품, 항해술 등이 필요했던 외지인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거나 길잡이 역할을 하며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술라웨시를 중심으로 보르네오와 말레이반도 등지에서 활동한 부기스족(Bugis), 인도네시아 동부 군도와 필리핀 남부 지역의 군도에 걸쳐 분포한 바자우족(Bajau)이 대표적인 오랑라우트이다. 이러한 해양민족의 세력이 강대해질 때는 섬을 장악하고 국가를 설립하기도 했다. 오랑라우트의 후예 중 소수는 여전히 그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가끔 미디어에 등장해 그 생활상을 짐작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