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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실크로드: 아세안 문명의 네트워크

칼럼

해상 실크로드: 아세안 문명의 네트워크
글. 강희정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소장

말레이시아 믈라카 해양 박물관

해상 실크로드는 기원 전후 서아시아와 인도,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왕래하는 길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남부 옥에오에서 발견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전은 이미 2세기에 로마와 동남아의 교역이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해상 실크로드의 확대는 5~6세기 동남아 여러 나라가 중국과 교역을 하면서 이뤄졌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동남아의 특산물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캄보디아, 베트남에 있던 고대국가에서 설탕과 후추, 정향 등의 향신료 교역을 하면서 중국의 음식과 한약 발달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명나라 영락제의 명으로 환관 정화가 남해 원정을 7차례 하면서 중국과 동남아에서 아프리카까지의 항로가 개척되었다. 정화는 베트남 중부의 참파와 인도네시아 자바, 수마트라를 거쳐 말레이시아 믈라카에서 스리랑카로 향했다. 이때부터 약 1세기 동안 믈라카가 동서 해상 교역의 거점으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베트남 옥에오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리구슬
© 베트남 옥에오문화유적관리위원회

이 항로는 기존 동남아 각 나라 선박들이 인도, 서아시아, 중국과교역하고 때로는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해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루트이다. 해상 실크로드는 단순히 물품의 교역로에 그치지 않고, 종교와 사상의 통로 역할도 했다. 이른 시기에는 이 길을 통해인도에서 불교가 전해졌고, 후에는 서아시아에서 인도를 거쳐 동남아로 이슬람교가 유입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5세기 말 세계사의 전환점이 된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유럽 각국이 아세안 여러 나라로 밀려 들어왔다. 이들은 이문이 큰 동남아의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앞다퉈 인도와 동남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고 이어서 동남아 각지를 점령했다. 제일 먼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다음으로 네덜란드와 영국이 동남아에서 각축을 벌였다. 특히 스페인은 멕시코에서 은을 가져와 필리핀에서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를 구매하는 삼각무역을 했다. 바야흐로 바다를 통한 세계 교역이 무르익은 셈이다.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아세안의 진귀한 물품이 팔려나가고 인도와 중국, 유럽에서 사람들이 대거 동남아로 이주했지만 이는 또한 식민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해상 교역을 장악함으로써 부를 축적했던 아세안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커피, 고무 나무를 비롯한 남미의 작물을 동남아로 가져와 플랜테이션을 만들었던 것도 결국은 바닷길의 개발로 가능했다. 해상 실크로드는 물류의교역에서 시작해 인류의 이동으로 이어지는 문명의 교차로였으며, 세계로 뻗는 아세안의 오늘을 만든 해상 네트워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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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3년 난파된 무역선 신안선에서 발견된 교역품 자단목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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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교역품 중 하나인 향신료